고령화 시대에 한국식 장례 문화를 논하다.
요즘 검은 옷을 입고 상주의 팔에 완장을 차고 차분한 분위기를 갖춰야하는 장례식은 사실 우리 전통문화가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일본식 장례식 요소들이 침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린 흰 옷이나 거친 무삼옷을 입고 상주는 실컷 곡을 하고 손님들은 떠들고 먹느라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진도의 다시래기 장례 문화
진도엔 다시래기라는 장례문화가 있었다. 출상 전에 빈 상여를 가지고 상주의 웃음보를 터트리게 하는 상여놀이. 상주를 웃게하다니 아이러니하다. 고인은 대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슬픔에 빠신 상주와 가족들을 일상으로 돌아오게끔 돕는 문화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진도 뿐 아니라 우리 전통 장례식이 그랬다.
이런 좋은 우리 전통문화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좀 아쉽다.
전통문화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라는 작품에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 나라 미용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그레이스 리라는 사람이 자기 장례식에는 절대 국화를 놓지 말고 곡소리 싫으니 탱고를 틀어달라고 해서, 실제로 그레이스 리 장례식에는 붉은 장미와 와인으로 손님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장례 문화 얘기할 때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한 번 보시면 좋겠다고 권하곤 한다. 본래 우리 장례 문화엔 축제적인 분위기, 요소들이 있었고 이 영화가 우리 장례 문화의 그런 면을 잘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제가 20대 초반이 되었을 때만 해도 아직은 그런 분위기들이 조금은 남아있었던 것 같다. 밤새 술 마시고 화투 치며 왁자지껄 놀며 상주들 곁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조문객들이 많았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주었고, 준비한 음식과 술을 나누며 몇 시간이고(길게는 반나절 넘게) 함께 머물러줬다. 그들과 사는 얘길 나누고 같잖은 농담들을 주고받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었다. 저는 이런 모습들도 옛 장례문화의 정서가 일정 부분 남아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우리나라 전통 장례 모습을 아시고 싶으시다면, ‘축제‘ 라는 영화를 추천합니다. 정말 잘 나와 있다. 다만 구하기가 어렵다. 장례식장에서 상복으로 검은 옷 입는건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인들이 입는 걸 들여온걸로 알고 있다. 그게 일제강점기를 통해 들어왔.
어머니가 가끔씩 하시던 말씀중에 본인 장례식에 아들 친구들 많이 와서 술도 많이 먹고 신나는 잔치처럼 치르라고 하셨었다. 자식으로서 너무 듣기 싫은 말이었다. 그렇게 해도 될까 고민되기도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고민이고 뭐고 할 거 없이 친구들한테 어머니 유언이니까 다들 자유롭게 떠들고 마시라고 여러번 얘기했. 대체로 잘 호응해주던 친구들이 새삼 또 고맙다. 내 장례식은 본격적으로 더 신나게 좀 했음 좋겠다. EDM도 좀 틀고 말이다.
요즘의 장례 문화에 대한 안타까움
예전엔 장례식도 보도했었다. 1분 1초라도 애도의 표정을 짓지 않으면 욕먹고, 장례식 안 가본 어린애들이 멋도 모른 채 욕하고, 연예인들은 욕먹지 않으려 내내 침통해하는 모습이었다. 요즘 한국의 장례 문화는 거기 휩쓸린 듯... 많은 조문객에 정신없고 슬플 틈도 없게 하고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상주를 웃게 하고 슬픔에 매몰되지 않게 해주는 것이 한국의 옛 장례 문화다. 실제로 상주도 조문객을 맞이하며 울다 웃다 수다 떨고 밥도 먹는 시간을 갖으며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는 장치이다. 고인이 대접하는 마지막 식사라 맛있게 잘 먹는 게 예의다. 받지 못할 조의금을 왜 내야 하는지부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참.. 그렇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되어버렸. 부조 관행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사회 공동체성의 변화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전통사회의 공동체성과 지금은 갭이 크다. 과거에는 가족과 친족 혈연을 기초로 마을이라는 사회적인 울타리 안에서 살았었다. 마을에서 누가 돌아가시면 돈으로 부조하기 보다 쌀 같은 현물을 십시일반으로 마련해서 부조하고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집은 직접 가서 일손을 거들기도 했다. 당연히 그렇게 했고 우리집에 누가 돌아가셔도 그 도움을 당연히 고인의 자손들을 통해 돌려 받으니까. 돌려 받지 못할 걱정은 애초에 할 필요도 없고, 왜 부조를 안 했니 왈가왈부 하지도 않았다. 혼례 때 도 마찬가지였다.지금은 그런 친족의 의미도 옅어져 가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 모여 살면서, 과거의 공동체성과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우리 전통적인 장례문화가 더 좋은 것 같다. 소중한 이의 죽음은 무겁고 슬픈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웃음과 미소로 시끌벅적하게 보내주는 것. 거기에는 세상을 뜬 이도 웃음 지으며 이승을 미련없이 떠날 수 있도록, 남은 이들은 슬픔을 떨치고 일상 생활로 하루라도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도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큰아버지 장례중 화장터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고인과 즐거웠던 시간을 돌아가며 어른들에게 들었는데 너무 웃기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전통이라는 것도 의미는 그 누구도 모르고 껍데기만 남아 있다면 곧 새로운 전통에 없어질꺼라고 본다. 한국의 좋은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좋은 전통들은 잘 전수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