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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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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시대에 한국식 장례 문화를 논하다. 요즘 검은 옷을 입고 상주의 팔에 완장을 차고 차분한 분위기를 갖춰야하는 장례식은 사실 우리 전통문화가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일본식 장례식 요소들이 침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린 흰 옷이나 거친 무삼옷을 입고 상주는 실컷 곡을 하고 손님들은 떠들고 먹느라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진도의 다시래기 장례 문화 진도엔 다시래기라는 장례문화가 있었다. 출상 전에 빈 상여를 가지고 상주의 웃음보를 터트리게 하는 상여놀이. 상주를 웃게하다니 아이러니하다. 고인은 대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슬픔에 빠신 상주와 가족들을 일상으로 돌아오게끔 돕는 문화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진도 뿐 아니라 우리 전통 장례식이 그랬다. 이런 좋은 우리 전통문화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좀 아쉽다. 전통문화 유성호 교수의 [나는 ..
기독교인에게 죽음이란... 제가 루스벨트 아일랜드로 와서 박사님과 대화를 나눌 거라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첫 번째로 궁금해했던 것이 바로 박사님의 건강 상태였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2년 동안 항암 화학요법을 받았는데, 그 치료 덕분에 암이 억제되었어요. 모두가 그 자체로도 놀랍다고 말했죠. 사실상 제가 상위 5%의 반응을 보이는 환자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 점에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그런데 암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어요. 이건 예고된 일이었죠. 암은 결국 성장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면역 요법 실험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실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서운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2,0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 중인 프로그램이에요. 이 ..
파브리쉐프 한국에서 더 넓어진 요리 스펙트럼과 철학. 이탈리아의 레스토랑은? 안녕하세요 제 칭구 파브리에요! 이제는 한국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이면서 여러가지 방송에 출연했던 파브리치오 페라리 요리사.. 이제는 파브리쉐프이기도 하고 친구처럼 느껴서 파브리라고 부르기도 해요. 파브리를 처음 본 것이 한식 대첩이었습니다. 유난히 한국에 대해 사랑이 넘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 이때 팬이 되어 지금까지 유투브, 파브리가 나온 백패커스 및 여러가지 요리다큐를 찾아 보고 있다.  파브리치오 페라리의 어린 시절, 요리사가 되기까지 파브리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레코에서 한 요리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레코의 코모 호수에서 해산물 식당을 운영했습니다. 화학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소년이었던 파브리는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요리사로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해..
강풀의 무빙, 자신의 약점에 집중하지 않고 계속 해온 자의 모습 넷플릭스 드라마 '무빙'은 2023년 8월 9일에 공개 된 만화가이자, 이제는 각본가 강풀이 썼던 드라마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사실은 엄청난 비밀을 가진 초능력자라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무빙'은 단순한 슈퍼히어로물을 넘어, 가족과 성장,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무빙의 줄거리는 국가의 비밀 프로젝트에 휘말렸던 과거와 그로 인한 상처는 현재 삶에 깊게 스며들어 있고,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려는 부모들의 고군분투와 그 능력을 이어받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집니다. 단순히 능력을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능력으로 인해 겪는 고뇌와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자아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입니다.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초능..
예술의 목적은 무엇인가..? 학교 다닐 때 정말 싫었던 과목이 있었다. 미술과 체육이었다. 특히 이해하 안되는것은 미술시간 이었다. 난 초등학교 내내 미술 시간에 하얀 스케치북을 앞에다 놓고 한 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다. 만들기는 어느 정도 했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미술이었다.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가치 없는 예술 작품인가?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이 등장하고나서 부터 더 이해할 수 없었다. 큰 캔버스에 점하나 찍어 놓고 비싼 값에 거래되는 예술 작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뱅크시라던가.. 암튼 예술계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철학과 미학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 시작은 비트겐슈타인이었다.  "우리 언어의 한계가 곧 우리 세계의 한계다"..